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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Chapter 1. 가옥 > 강릉 선교장 (江陵 船橋莊)

♣ 강릉 선교장

강릉 선교장 (江陵 船橋莊)
명 칭 강릉 선교장 (江陵 船橋莊)
종 목 국가민속문화재 제5호
소재지 강원 강릉시 운정길 63 (운정동)

나레이션 나레이션

강릉 선교장은 조선시대 사대부가(士大夫家)로서 18세기 초 효령대군의 11세손인 무경 이내번(茂卿 李乃蕃, 1692∼1781)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지은 집이며, 여러 대를 거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경포호가 현재보다 넓은 면적으로 조성 되어있던 당시에는 배를 타고 건너다니던 배다리마을(船橋里)에 위치하여 ‘선교장(船橋莊)’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이내번의 5대조 조상인 완풍 부원군 이서(李曙)는 인조반정 이후 충북 음성에 터를 잡았으나, 이후 점차 가세가 기울어 이내번의 유년기에 모친인 안동 권씨를 따라 외가인 강릉으로 이사를 하였다. 저동(苧洞, 경포대 주변)에 거처를 마련한 이내번은 점차 살림을 일구어 재산이 불어나자 보다 넓은 집터를 찾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족제비 몇 마리가 나타나더니 나중엔 한 무리를 이루어 서서히 북서쪽으로 이동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무경(茂卿)은 그 뒤를 쫓았고 서북쪽으로 약 2.5리(약 1km)가량 떨어진 어느 야산의 울창한 송림 속으로 족제비 무리가 홀연히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신기한 생각에 한동안 망연히 서있던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 주위를 살피고는 이곳이야말로 하늘이 내리신 명당(明堂)이라고 여기고 터(基)를 정하게 되었다.

강릉 선교장 (江陵 船橋莊) 중문
▲ 선교장: 중문

선교장은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와 동별당, 서별당, 정자 등을 갖추었으며, 집의 주위 환경까지 잘 아우르고 있어 민가로서는 부족함이 없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선교장은 내 외부를 구획하는 행랑채의 긴 벽체에 의해 정리된 대지주의 장원을 모습을 보인다. 내부의 평면까지 함께 살펴보면 선교장은 전형적인 상류주택의 면모를 두루 갖추고 있는 동시에, 시기를 달리하여 유연하게 확장된 평면의 구성을 지닌다.

열화당(悅話堂)은 선교장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1815년(순조15)에 이내번의 손자 이후에 의해 건립된 것이다. 3단의 장대석 다층 기단위에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누마루가 있는 팔작지붕의 사랑채이며, 대청, 사랑방, 침방, 누마루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평면을 지닌다.

툇마루 앞에는 창덕궁 연경당 서재의 것과 같은 함석으로 만든 서구풍의 차양이 설치되어 있다. 활래정(活來亭)은 선교장을 들어서는 입구에 지어진 정자로 이후가 1816년(순조16)에 건립하였으며 사후 이근우가 중건하였다. 활래정은 ‘ㄱ’자형으로 대청이 연지 속으로 들어가 돌기둥으로 받쳐져 있는 누각형식의 건물이며 두 개의 온돌방과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교장은 낮은 산기슭을 배경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독립된 건물들이 지어지는 등 조선 후기 민가주택의 발달사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또한 강릉 선교장 소장 태극기(등록문화재 제648호)를 포함하여 가옥 내 여러 살림살이들은 옛 강릉지역 사람들의 생활관습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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