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남한산성 > 삶과 죽음, 길은 달라도 치열함은 다르지 않아♣ 삶과 죽음, 길은 달라도 치열함은 다르지 않아
나레이션1. 주화(主和)와 척화(斥和): 찢겨진 항복문서 병자호란의 고립된 성 안에서 조선의 조정은 둘로 나뉘었습니다. '죽음보다 삶'을 택해 훗날을 기약하자는 주화파 최명길은 갖은 수모를 견디며 항복 문서를 썼고, '대의명분'을 위해 목숨을 걸자는 척화파 김상헌은 그 문서를 찢으며 울부짖었습니다. 최명길이 찢어진 종이를 줍우며 "대감은 찢으시오, 나는 주워 맞추리다"라고 했다는 일화는 남한산성이 목도한 가장 비극적이고도 치열한 사상적 대립의 순간을 상징합니다.
2. 삼학사와 현절사: 꺾이지 않는 절개 인조의 항복 이후, 끝까지 화친을 반대했던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삼학사'는 청나라로 끌려가 참혹한 죽음을 맞으면서도 끝내 기개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숙종은 이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성 내에 **현절사(顯節祠)**를 건립했습니다. 이곳은 훗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속에서도 살아남아, 우리 민족이 지켜온 정조와 의리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습니다.
3. 수어장대와 무망루: 잊지 못할 시련의 기록 성 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수어장대(守禦將臺)**는 지휘관이 전장을 살피던 곳입니다. 남한산성의 5개 장대 중 유일하게 남은 이곳의 2층 누각에는 **'무망루(無忘樓)'**라는 편액이 걸려 있습니다. 이는 정조가 인조의 시련과 효종의 북벌 의지를 '결코 잊지 말자'는 뜻으로 명명한 것으로, 남한산성이 단순히 패배의 장소가 아닌 성찰과 복구의 공간이었음을 보여줍니다.
4. 옹성과 포루: 기술로 구현된 항전 의지 남한산성에는 성벽을 보호하고 화력을 집중하기 위해 길게 뻗어 나온 5개의 옹성이 설치되었습니다. 옹성 끝에 마련된 포루는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조선 축성술의 정수입니다. 이는 입으로만 싸운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국방 기술을 통해 끝까지 나라를 지키려 했던 치열한 항전의 증거입니다.
YouTube
▸Copywriting Polished by Google Gemini AI
Digital Heritage Library of Korea
© Insightfully Audited by Google Gemini, Tourhealthy.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