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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Chapter 12. 남한산성 > 잠들었던 남한산성의 역사를 깨운 발굴과 복원

♣ 잠들었던 남한산성의 역사를 깨운 발굴과 복원

남한산성 행궁 (南漢山城 行宮): 잠들었던 남한산성의 역사를 깨운 발굴과 복원
▲ 남한산성 행궁 (南漢山城 行宮): 사적 제480호
나레이션 나레이션

1. 행궁 복원: 사진과 발굴이 되살린 조선의 자존심 일제강점기 철저히 훼손되었던 남한산성 행궁은 1909년 촬영된 옛 사진과 10여 년에 걸친 정밀 발굴 조사를 통해 고증·복원되었습니다. 전국 20여 곳의 행궁 중 오직 남한산성만이 왕의 정무 공간(외행전)과 침전(내행전)을 넘어, 왕실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좌전(종묘)'**과 토지·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우실(사직단)'**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남한산성이 단순한 피난처가 아닌, **'완벽한 기능을 갖춘 산 위의 수도'**였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입니다.

2. 하멜의 기록: 서양인의 눈에 비친 난공불락의 요새 1654년, 조선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하멜은 《하멜표류기》를 통해 남한산성을 "왕의 피난처로 사용되는 매우 견고한 요새"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당시 산성 내에 3년 치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었다고 기록했는데, 이는 남한산성이 장기전을 염두에 둔 철저한 계획도시였음을 외부자의 시각으로 증명해 줍니다. 하멜 일행은 청나라 사신들의 눈을 피해 이곳에 격리되어 조총과 화포 등 무기 제조 기술을 전수하기도 했습니다.

3. 살아있는 문화유산: 공동체가 지켜온 1,300년 남한산성의 진정한 가치는 유적이 박제되지 않고 현재와 공존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축성 당시부터 형성된 마을에는 지금도 주민들이 살아가고 있으며, 매년 음력 9월이면 백제의 온조왕을 기리는 숭렬전과 삼학사의 충절을 기리는 현절사에서 제례를 올립니다. 과거의 기록이 주민들의 삶 속에서 매년 되살아나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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