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색실로 피운 모정(母情) > 이야기♣ 색실로 피운 모정(母情)
인선은 가만히 다리를 뻗었다. 날로 쑥쑥 자란다지만 마루는 일곱 살 아이에게 여전히 높 았다. 다리를 앞뒤로 달랑달랑 흔들면서 인선은 저 아래 마당을 내려다보았다. 햇살이 따스 한 봄날답게 마당은 꽃들로 화사했다.
“빨간 꽃이 하나, 둘, 셋….” 아이는 조막만한 손을 펼쳐서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손가락은 금세 동이 났다. 두 주먹 을 꼭 쥔 인선은 주먹과 꽃 무더기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퍽 곤란하다며 고개를 기울이던 아 이는 이번에는 버선 안의 발가락을 꼼질거렸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열심히 이쪽저쪽 발의 발가락을 연신 꼼질거리던 인선은 아무래도 안 되겠던지 도리도리 크게 고개를 저었다. 두 손과 두 발로도 저 풀꽃들을 전부 헤아리기는 힘 들 듯 했다.
여느 지체 높은 기와집에는 귀하디귀하고 곱디고운 꽃나무만 기른다 하지만, 여기 강릉집 에는 이목을 끄는 탐스럽고 진귀한 꽃나무보다는 이름 모를 풀꽃이 더 많았다. 자신의 두 손 과 두 발로는 턱 없이 부족했다. 저 꽃들을 전부 헤아리려면, 어머니의 손과 발도 필요하고 거기에 더해 한양에 계신 아버지의 손과 발까지 빌려야 한다.
나중에 아버지가 강릉에 오시면, 그때 다 같이 마루에 앉아 함께 꽃을 헤아리자 해야겠다. 인선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환히 웃었다. 그 웃음을 시기하기라도 하는지, 난데없이 바람 이 일어 마당을 휩쓸었다. 바람은 마루에 앉은 인선에게도 불어 머리칼이 사방으로 날리고 옷고름도 풀썩 허공에 뜬다.
“…앗!” 놀라서 외친 인선은 얼른 고사리 손을 들어 제 머리를 붙잡았다. 하지만 손이 없는 풀꽃들 은 속절없이 흔들렸다. “어? 어!” 불안해진 인선이 버선발로 댓돌을 밟고 일어섰다. 세찬 바람은 지나가고 마당은 제 모양을 되찾았다. 아이는 댓돌 위에 서서 고개를 길게 뺐 다. 부산스럽게 이리저리 휘어져있기는 했지만 풀꽃들은 용케도 씩씩하게 버텼다. “휴우….” 아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꽃이 떨어지면 어머니가 슬퍼하신다. 어머니는 저 소소한 풀꽃을 특히나 귀애하기 때문이다. 인선이 보기에는 무엇이 무언지 분간도 가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그 작은 꽃들의 이름도 전부 알고 있었다. 어디 그뿐이던가. 마당 어귀에 가만히 앉아있노라면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서 구슬프게 목을 울려 지저귀기도 했고, 색 고운 나비나 이름 모를 풀벌레들이 주위를 맴돌기도 했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어머니가 손을 뻗어 시든 꽃잎을 어루만졌는데, 꽃이 갑자기 생기를 되찾아 탐스럽게 피어나기까지 했다. 잠결에 밖에 나왔다가 무심코 그 모습을 본 인선이 신 기한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서 손뼉을 치자 어머니의 손이 와락 자신을 붙잡았다.
‘인선아, 지금 무얼 본 게냐?’ 어두운 달밤이었고, 어머니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꽃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만지자 고개를 푹 숙인 꽃이 다시 어여쁘게 피어나는 걸 보았습니다. 그리 말해야 하는데 입술이 딱 달라붙어서 한 마디도 떨어지지 않았다. 우물쭈물 망설이 다가 결국 밤중에 어머니가 나와 있는 모습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달려 나왔다고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날의 일이 다시 떠올라 인선은 입술을 꼭 깨물었다. 어머니의 본적 없던 그 얼굴이 머릿 속에서 사라지지 않아서 몇 번이고 고갯짓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문득문득 떠올라서 자신을 두렵게 했다. 아이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는 마루를 한 걸음에 올라와서는 고개를 두리 번거리며 어머니를 찾았다. 며칠 전 본 무서운 얼굴을 한 어머니는 꿈속의 일일 것이다. 그 게 아니라면 잠결에 잘못 본 것일 게다. 인선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종종 걷는 걸음은 대청마루를 가로 질렀다.
“어머니?” 장지문을 열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본다.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계셨던 모양인지, 먹물에 젖은 붓이 가지런히 벼루 위에 걸쳐져 있는 채였다. 인선은 조심조심 걸음을 옮겨 궤상 앞에 매무새를 갖춰 앉았다. 궤상 위에 펼쳐진 명주실로 짠 비단의 고운 빛깔이 인선의 눈길을 끌었다. 까만 눈망울은 연신 비단을 바라보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불현듯 아무 것도 없는 뽀얀 비단 위로 알 수 없 는 형상들이 하늘하늘 스쳤다.
“응?” 아이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쑥 내밀어 비단을 보자 봄날의 아지 랑이 같던 형상은 온데간데없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어 비단을 톡톡 건드려본다. 그래 도 조금 전에 본 형상은 보이지 않았다. 퍽 이상한 일이라 여기며 인선은 비단에서 시선을 떼며 허리를 세웠다. 아무래도 잘못 본 모양이다.
좀처럼 오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던 인선은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이리저리 방을 살폈 다. 호기심으로 가득 찬 동그란 검은 눈망울은 방을 한 바퀴 돌아 다시 궤상을 향했다. 유난 히도 흰 비단이 인선의 눈을 사로잡았다. 꼴깍 침을 삼킨 인선은 홀린 듯 뚫어져라 비단을 들여다보았다.
그 순간이었다. 잠시 사라진 형상이 다시 굼실굼실 피어오른다. 뭉게구름 같기도 하고, 아지랑이 같기도 한 형상이 비단 위에서 꿈틀거리며 솟구치며 저들끼리 뒤엉키다가 급기야는 곳곳에서 하나 로 뭉쳐져서 두둥실 떠올라 산이 되고, 아래로 흘러 너른 수면이 된다.
“어…?” 인선은 급히 눈을 비볐다. 그런데도 형상은 그대로였다. 연기처럼 가물가물 하지만 용케도 비단 위에 머물러 있었 다. 입이 저절로 크게 벌어졌다. 손뼉을 치려다말고 인선은 손을 움츠렸다. 자칫하다가는 저 흔들흔들 비단 위에 머무른 형체가 죄 사라져버릴 것만 같다. 그 대신 인선은 몸을 앞으 로 기울여 비단을 살폈다.
“아! 그 그림이다!” 인선은 무언가 생각났는지 외쳤다. 얼마 전 어른들이 보며 감탄하던 그림과 참으로 꼭 닮았다. 곁눈질로 잠깐 보았지만 인선 은 그 그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자꾸 눈길을 주며 호기심을 보이자 외조부 이사온이 인선을 불러 그림을 보여주었기 때문이었다.
‘인선아, 보거라. 한양에서 첫째가는 화가, 안견의 그림이란다.’ 인선을 무릎 위에 앉히고서 이사온은 첩첩히 쌓인 산과 아스라이 펼쳐진 수면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그림을 설명했다.
그 산과 그 수면이, 자그마한 나룻배며 산 속에 자리한 작은 집도,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이 비단 위에 있었다. 신기한 마음에 인선은 연신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눈을 굴렸다. 이렇게 보아도 참으로 좋았다. 앞으로 바다가 펼쳐지고 뒤로 산이 있는 강릉만큼 아름다운 곳이 없다고 여겼는데, 저 그림도 그만큼 아름다웠다.
어쩌면 어머니도 이 그림을 좋아하실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한 인선의 눈이 반짝이며 빛났다. 빨리 가서 어머니를 불러와야 한다며 일어서려던 인선이 도중에 멈췄다. 아이의 시선 은 붓을 향해 있었다. 아이는 비단과 붓, 그리고 자신의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글을 쓰는 법은 외조부 이사온 에게 배워서 곧잘 했던 인선이었으나 그림은 한 번도 그려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외조부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그림을 잘 그리기 마련이라 했다.
이사온의 말을 떠올린 인선은 방긋 웃으며 고사리 손으로 야무지게 붓을 쥐었다. 미처 거두지 못한 먹물이 툭, 뽀얀 비단 위로 떨어졌다. 아이는 놀라는 기색도 없이 떨어진 먹물 위 로 붓을 위로 그었다. 시커먼 먹물은 붓질에 너르게 퍼지며 뭉실뭉실 위로 올라 쑥 튀어나온 암벽이 되었다. 가볍게 붓을 뗀 인선은 다시 그 위로 붓을 놀렸다. 암벽 위로 첩첩이 토파가 쌓이기 시작했다. 무너질 듯 아슬아슬하게 쌓인 토파 위로 툭툭 점이 아무렇게나 찍혀 자연스러움을 더하고, 갈라진 토파 사이로는 비죽이 나무가 솟더니 촘촘히 잎이 달린다.
사방팔방으로 쉼 없이 이어지는 붓질에 비단 위로 느슨하게 출렁거리며 머물러있던 기운 들은 붓을 타고 오르다가, 암벽과 토산, 너른 수면 위로 와르르 쏟아져 마침내는 그림 속으 로 쑥 스며들었다. 인선은 붓을 벼루에 놓았다. 이제 겨우 일곱 살, 자그마한 아이의 앞에는 조선의 명화가라 는 안견의 그림을 쏙 빼닮은 그림이 놓여 있었다. 그 뿐이던가, 고작해야 필선과 형태만이 아닌 그 그림에 감도는 기운 또한 명화가 안견에 버금갔다.
필시 가만히 멈춰있는 그림일진데, 넓게 펼쳐진 수파가 일렁이는 듯하고, 암벽 위의 나무 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듯했다. 도무지 일곱 살 아이의 솜씨로는 볼 수 없을 만큼 참으로 신 묘한 그림이었다. 아이는 이마 위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소맷부리로 씻었다. 발그레 물든 두 뺨이 방긋 웃는 웃음에 통통하게 살이 올랐다. 이제야말로 어머니를 부르러 가야겠다며 인선이 일어서려던 때였다. 닫혔던 장지문이 드르륵 열리며 인선의 어머니, 용인 이씨가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 오셨어요!” 인선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 인선아, 저 그림은 무엇이냐?” 우뚝 서서 그림을 바라보는 용인 이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그린 그림이어요.” 인선은 웃는 낯으로 모친을 올려다보았다. 필시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드신 것이리라. 어 린 마음은 금세 벅찼다. 용인 이씨는 인선의 키에 맞춰 무릎을 굽혔다.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그녀는 다시 물 었다.
“정녕 네가 그렸단 말이냐?” 인선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참말입니다. 저 인선이가 그렸어요.” 아이는 손을 뻗어 그림을 가지고 왔다. “어머니 들어보세요. 참으로 신기한 일이 있었답니다. 저 인선이가 예서 어머니를 기다리 며 하얀 비단을 보고 있었는데 말이죠. 갑자기 안개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한 곰실곰실 한 뭔가가 이 비단 자락 위에서 제게 손짓을 했어요.” 인선은 그 광경을 설명하려는지 자신의 손을 펼쳐 이리저리 손가락을 팔락거리며 움직 였다.
“그러더니 저들끼리 어우러져서 이만치 높다란 산이 되고, 아래로 내려간 것들은 출렁거 리며 너른 바다가 되었어요. 가만히 보니까, 그 모양새가 할아버지께서 얼마 전에 보여주신 한양에서 첫째가는 화가의 그림과 꼭 닮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어머니께도 꼭 보여드리고 싶어서 저 인선이가 붓을 들었습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초지종을 설명하는 인선은 손을 제 머리 위로 쑥 높이 들어 첩첩히 높은 산을 표현하고, 손가락을 넓게 펼쳐서 산 아래 물을 나타내었다. 정말로 신기하지 않느 냐며 자신이 그린 그림을 다시 보던 아이는 용인 이씨가 대답이 없자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 “어이하여… 어이하여 이런 일이 있단 말이냐.” “어…머니?”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는 모친의 두 눈이 유독 어두웠다. 인선은 덜컥 겁이 나서 무릎걸 음으로 모친에게 다가갔다.
“어머니, 괜찮으셔요?” 조심스레 물어보지만 모친의 눈은 여전히 그림을 향해 있었다. 아이의 둥그런 눈망울은 자신이 그린 그림과 모친의 얼굴을 번갈아 살폈다. “제 그림이 못난 것입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 어떤 보화로도 못 바꿀 만치 귀하다말고.” 모친은 고개를 저으며 인선을 두 팔로 안았다. 모친의 품은 여느 때처럼 따스했지만 인선 은 불안하게 두근거리는 심장이 좀체 가라앉지 않았다.
“인선아.” “네, 어머니.” “내 너에게 긴히 할 말이 있느니라.” 나지막이 가라앉은 모친의 목소리가 귓가로 흘러들어왔다. 인선은 모친의 품 안에서 고개 를 들었다.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지만 모친의 눈빛은 가을밤의 달빛 같이 쓸쓸하게 보였다. “어머니…?” “그간 아무 조짐이 보이지 않아 내 너를 다른 형제들과 같다고만 여겼거늘. 너는 이 나의 피를 이은 모양이구나.” 인선은 큰 눈을 여러 번 깜박였다. 그것은 일곱 살 아이가 듣기에 퍽 낯설어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 사임당은 번쩍 눈을 떴다. 심히 오랜만에 보는 모친의 모습에 심장이 두방망이질 했다. 심하게 뛰는 심장을 안고서 사임당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날이 밝으려면 아직 한참이나 더 있어야 하는지, 장지 너 머는 캄캄했다. 사임당은 떨리는 눈동자를 거두듯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아스라한 어릴 적 일을 생생히도 꾸었다. 어릴 적 이름으로 다정하게 자신을 부르던 모친 의 목소리도, 인자한 모친의 낯도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너무도 생생한 나머지 복받치는 마 음을 거둘 길이 없었다. 탄식이 입 밖을 빠져나올 것만 같아서 사임당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귓가에는 여 전히 모친의 목소리가 맴돌아서 저릿하게 아려오는 마음을 달래려 하지만 좀체 쉽지가 않 았다.
‘인선아, 앞으로 네게는 신기한 일들이 벌어질 게다. 새가 너를 따르며 구슬프게 지저귀 고, 풀벌레도 기운을 좇아 쉬이 걸음을 하니. 네가 너의 기운을 능히 쓰는 날에 이르면, 네 손 끝에서 봉오리 진 꽃이 때 이르게 아름드리 만발하고 하물며 때를 지나 시들어가던 잎도 초록을 되찾을 게야.’ 모친은 영문을 몰라 눈만 깜박이는 자신을 안고 슬픈 눈으로 그리 말했다. 새가 지저귀고 풀벌레가 따르며, 꽃이 피고 잎이 살아나는데 어찌 그것이 저리도 슬플까. 모친의 눈을 바라보며 그저 그렇게 밖에 생각하지 못하는 자신의 뺨을 모친은 몇 번이고 다정하 게 쓰다듬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그 손길이 좋아서 가만히 고개를 기울이자 모친은 목 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인선아, 너는 선인의 후손이니라.’
선인. 저 멀리 곤륜산 꼭대기에서 3천 년에 한 번 열린다는 복숭아인 반도를 먹고, 평생토록 아 프지도 병들지도 않는 몸으로 산다는 그들 말인가. 자신과는 참으로 무관한 일이라 여겨 멀 뚱멀뚱 눈만 깜박이자 모친은 와락 자신을 품에 안으며 다시 말했다. ‘인선아, 이 어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우리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선인의 후 손이란 말이다.’ 모친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이 얼마나 기구한 운명이냐. 기구하고말고. 이 어미가 이런 기구한 삶을 사는 걸로 모자 라 너마저 이 굴곡진 길로 끌고 왔으니 숨통이 죄이고 간장이 끊기는 듯하구나.’ 떨리는 목소리는 결국 울음으로 바뀌었다. 한 번도 본적 없던 모친의 눈물이 어린 자신을 슬프게 했다. 그 바람에 영문도 몰라서 가만히 모친의 말을 듣다 말고 왈칵 눈물을 쏟았다. 모녀는 서로 울지 말라 말하며 한바탕 서럽게 울어야 했다.
붓으로 비단 위를 천지사방으로 달리며 재능을 맘껏 뽐냈던 그날은, 사임당의 기억에서 가장 슬픈 날이기도 했다. 오히려 그 날을 뒤로는 크게 놀랄 일도 슬플 일도 없었다. 그저 모 친은 자신에게 선인과 관계된 그 무엇도 입 밖에 꺼내지 말기를 당부했다. 어느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모친과 자신만의 비밀. 철없던 어린 시절에는 그 비밀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그저 모친과 자신의 관계를 더 각별 히 해주는 무언가로만 여겼다.
어린 자신은 이전처럼 모친의 품 안에서 마냥 행복했다. 다만 이전과 달리 자신은 바느질 이나 몸가짐을 배우는 대신 인간의 몸으로 선인의 기운을 어찌 다스려야 하는 지를 배웠다. 기운이 선인의 것이라 하여도 이를 담은 그릇은 인간의 육체이니, 섣불리 기운을 사용하다 가 몸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러 기운이 넘쳐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비단보를 펼쳐 붓을 놀렸다. 마음 같아 서는 처음 붓을 휘둘렀던 그날처럼 끝없이 펼쳐진 호수와 하늘을 찌를 기세로 첩첩히 올라간 산을 그리고 싶었지만, 무릇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대상의 기운을 붓으로 옮기는 법이었으 니, 그렇게 산천을 그렸다가는 몸에 무리가 가기 마련이었다. 그러니 그 대신으로 작은 풀벌레와 꽃들을 화폭에 옮겼다. 산천에는 거대한 자연의 이치 가 담겼다면, 작은 풀벌레와 소담하게 핀 꽃에는 그에 맞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가지나 오이, 수박부터 아름드리 핀 모란이며 국화, 나리꽃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실과 꽃들이 자신의 붓을 거쳐 비단 자락에 옮겨졌다.
산천을 그릴 때는 기분이 들뜨다 못해, 숨이 가쁘고 가슴이 벅차서 정신이 쏙 빠져나가고 온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면, 그보다 작은 이들을 그릴 때면 작지만 결코 가벼이 여길 수만은 없는 기운들 안에서 평온을 찾았다. 사임당은 나비를 그릴 때면 나비가 되고 벌을 그릴 때면 벌이 되어, 꽃들 사이를 날고 그 향기에 흠뻑 젖어들었다. 그때만은 반쪽짜리 선인이라는 불완전한 처지에 관한 시름을 잊고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허나 무엇보다 의지가 되고 위안을 주었던 상대는 바로 자신의 모친이었으리라. 속된 기운을 피해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강릉에 살며 밤새 대화를 나누고, 마주앉아 수를 놓고, 때로는 친우처럼 때로는 모녀로서 돈독히 정을 쌓고 시름을 나누었건만, 그 모친이 자 신을 두고 가버렸다.
인간의 몸으로 태어난 이상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지만, 너무도 허무하게, 그 흔한 죽음의 전조도 없이 훌쩍 떠났다. 하물며 시신도 남기지 않았으니 속세의 여느 사람들의 눈으로 보 기에는 홀연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한참이나 멀리 떨어진 한양에 있던 사임당은 모친의 죽음을 느끼고는 그길로 부랴부랴 강 릉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사라진 모친의 행방에 사람들은 사방팔방으로 찾아다녔을 뿐, 설 마 모친이 죽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오로지 사임당만이 수족이 떨어져나간 듯, 모친의 빈자리를 느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녀는 흡사 세상을 잃은 듯 했다. 아뜩한 망망대해에 뚝 떨어져서 눈앞이 캄캄 하고 사지에 힘이 빠져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제 이 세상에 의지할 곳 없이, 답답한 속내를 토로할 곳도 없이 완전히 홀로 되었구나. 그런 생각만이 하염없이 사임당의 간장을 허물어뜨리고 가슴을 도려냈다. 몇날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다. 하늘을 올려다보아도 솟구치는 눈물을 막을 수 없었다. 오 히려 내리쬐는 따스한 햇볕이 뺨을 어루만지는 모친의 손길 같아서, 털썩 바닥에 주저앉아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읍소했다. 그럴 수 없다면 제대로 장사라도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절히 호소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사임당의 절절한 하소연이 통했을까, 사라졌던 모친의 시신은 양지 바 른 곳에 홀연히 나타났다. 그 길로 장사를 지내 모친의 부고를 알렸건만, 너무도 갑작스런 죽음 앞에 사임당은 넋을 놓아버렸다. 날이 밝으면 모친이 다녔을 산천을 떠돌고, 날이 저물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모친이 남긴 세간을 어루만지고 다시 어루만졌다. 물 한 모금도 제대로 삼킬 수 없어서, 결국 식음 을 전폐하고 몸을 돌보지 아니하였다. 너무 눈물을 쏟아내 가문 논처럼 쩍쩍 갈라진 가슴을 두드리며 어째서 이리도 갑자기 가셨 느냐 사임당은 목 놓아 외쳤다. 그러다 까무러치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랬는데, 무심한 세월이 자신을 어찌어찌 목숨부지하게 했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되었단 말인지.
“하….” 사임당은 결국 탄식을 토했다. 모친이 세상을 뜬 지 어언 몇 년이던가. 세월은 하 무심도 했다. 떨리는 입술을 힘주어 다 물던 사임당은 북받치는 그리운 마음을 도통 감출 길이 없었던 나머지 긴긴 한숨과 함께 시 구를 읊었다. “천 리 먼 고향 산은 만 겹 봉우리로 막혔으니 돌아가고픈 마음 오래도록 꿈속에 있네. 한 송정에 외로이 둥근 달 뜨고 경포대 앞 한 줄기 바람이로다. 모래톱엔 언제나 백로가 모였다 흩어지고 파도 위로 고깃배들 오락가락 떠다닌다.
언제나 강릉 땅을 다시 밟아서 색동옷 입고 어머니 곁에서 바느질할꼬.” 사임당은 쓸쓸한 목소리로 모친을 그리는 마음을 읊었다. 시에 마음을 실어 이 깊은 그리움을 잊어보려 했지만, 출렁출렁 파도치는 속절없는 그리움이 다시 와르르 밀물처럼 밀려와 마음을 채울 뿐이다. 그리운 마음은 가슴에 품어도, 하물며 그립다 입 밖에 꺼내도 첩첩이 산처럼 드높아지기만 하지 않던가. 더욱이 모친이 살아 계실 적 지었던 시로 지금의 사무치는 이 그리운 마음을 달래기는 퍽 무리이리라.
“아아…, 어머니.” 어째서 간다는 말씀도 없이 그리 가셨습니까. 저 인선이가 눈에 밟히지도 않으셨던 겁니까. 차라리 자신이 강릉을 떠나지 않고 모친과 줄곧 함께 있었더라면 이 비극적인 이별을 미룰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양에 가겠다는 자신을 걱정하며 여러 번 만류했던 모친이 아니던가. 모친을 향한 그리움에 자신이 몸져누웠듯, 모친도 그 그리움이 병이 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법도 했다.
허나 그리움이 아무리 깊다 해도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날 정도란 말인가. 사임당은 고개를 저었다. 정작 자신이 강릉 땅의 천연한 기운과 사뭇 다른 한양 땅에 적응을 못해 생사를 오가며 열병을 앓을 동안 강릉에서는 아무 전갈이 없었다. 모친의 곁에 늘 함께 있던 여종들도 조금 기력이 없어 뵈긴 했지만 건강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하지 않았던가. 모친이 세상을 떠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여전히 그 죽음에는 미심쩍은 점들로 가득했다.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구나.” 솟구치는 의문을 누르며 사임당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이 죄다 자신의 탓 같기 만 해서 사임당은 견딜 수가 없었다. 여러 번 깊게 숨을 몰아쉬며 심난한 마음을 쫓아보려 애쓰지만 꿈속에서 오랜만에 본 모친의 모습은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서성거리며 방 안을 배회하던 사임당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장롱을 열어 깊숙이 넣어둔 광주 리를 꺼냈다. 손에 자주 닿아 반질반질 윤이 나는 뚜껑을 잡고 열자, 그 속에는 하얀 명주천 이 담겨 있었다. 바로 모친이 사임당에게 남긴 유품이었다. 광주리 안에 곱게 접힌 천을 꺼낸 사임당은 조심스럽게 명주를 어루만졌다. 모친이 자신 에게 남긴 물건은 이 고운 명주 천뿐이었다. 도대체 무슨 영문으로 이 고운 천을 자신에게 남기고 갔는지 마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그간 고이 간직해두고 때때로 꺼내어 어루만지며 모친을 향한 그리운 마음을 달래기만 했었다. 필시 무슨 연유가 있었을 터인데.
“어머니,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제게 명주를 남기셨단 말입니까?” 답답한 마음을 담아 물어보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윤이 나는 명주를 어루만지던 사임당은 훌쩍 천을 펼쳤다. 바닥에는 하얀 명주가 강처럼 길게 늘어졌다. 이전이었더라면 천지사방의 기운들이 저들을 봐 달라 속삭이며 하얀 명주 위에 이리 번 뜩, 저리 번뜩 나타나곤 했다만, 지금 사임당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아 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모친을 잃은 충격으로 붓을 내려둔 지 어언 몇 년 째던가. 그간 슬픔과 의문에 사로잡혀 붓 을 들 여력조차 나질 않았다. 그 사이 제대로 풀지 못한 기운은 제 안에서 제멋대로 뒤엉켜 서 머리를 혼탁하게 만들고 사지를 무겁게 했다. 살아 있되, 살아 있지 않은 것과도 같은 삶 이었다. 좀처럼 꿈에 나타나지 않던 모친이 이 같이 자신을 찾아온 건, 어쩌면 이런 자신을 일깨우 기 위함은 아니었을지. 문득 떠오른 생각은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그림에 대한 열망을 부추겼다. 어쩌면 다시 예 전처럼 비단 위에 마음껏 기운을 풀어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불안하게 뛰던 심장은 다른 의미로 뛰기 시작했다.
사임당은 황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 궤상 위는 말끔했다. 그림을 그릴 도구는커녕 붓 한 자루도 없었다. 사임당의 얼굴에는 낭패라는 기색이 스쳤 다. 모친을 잃은 슬픔에 잠겨 허우적거리는 동안 붓을 드는 것은 물론, 벼루에 먹조차 갈아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은 너무도 오랜 시간을 슬픔에만 잠겨 있었다.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고, 하물며 가족 들을 돌볼 여력조차 없었다. 삶을 외면해온 자신이 기운을 읽어 그림을 그려낼 힘이 과연 남 아있단 말인지. 손은 궤상 주위에서 갈 곳을 잃었다. 제대로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주저앉듯 털썩 팔이 떨어졌다.
사임당은 고개를 숙였다. 시선의 끝에는 하얗게 펼쳐진 명주자락이 있었다. 모친은 떠났 지만 명주의 반지르르한 윤기는 여전했다. 사임당의 심장은 다시금 두근거렸다. 꼭 검은 먹이어야할 필요가 있단 말이더냐. 힘없이 늘어진 손이 황급히 장롱의 문을 열어 젖혔다. 벼루와 붓은 온데간데없지만, 장롱 깊숙이 바느질 도구는 여전했다. 명주를 바르게 펼친 사임당은 색실을 꺼내고, 바늘을 손에 들었다.
“하아….” 사임당은 깊이 심호흡했다. 바늘을 잡는 손가락은 바르르 떨렸다. 인자한 모친의 얼굴이 다시금 눈앞을 스쳤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먹먹하다. 속절없이 솟구치려는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사임당은 이를 악물었다. 언제까지 이리 살 수만은 없었다.
‘인선아, 보아라. 간밤에 바람에 밀려 잎이 떨어지고, 새벽 서리에 기운을 잃은 꽃과 풀들 은 해가 뜨면 다시 활기를 되찾는단다. 한없이 가녀려보여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강인한 존재이니라. 그러니 삶이 고난하고 힘겨울 땐, 그들에게 의지하려구나. 그들의 기운이 너를 살게 할 것이니라.’ 강릉을 떠나는 그날의 모친의 당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어머니….” 간절한 마음을 담아 모친을 부른 사임당은 흐릿한 정신을 가다듬으며 자수바늘을 들었다.
1551년 여름날이었다. 더위가 슬슬 기승을 부리던 그날은, 수운판관(水運判官)이 된 이원수가 아들들과 함께 평 안도로 떠나려는 참이었다. 삼청동 어귀에 자리한 이원수의 집은 아침나절부터 채비로 분주 했으나, 사임당은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마당을 가로지르던 이원수는 도중에 걸음을 멈췄다. 시선은 사임당이 머무는 안채에 향해 있었다. 뒤를 따르던 셋째 현룡은 이원수의 뜻을 금방 알아차렸다. “아침에 문안인사를 드리긴 했습니다.” “어떠했느냐?” “나중에 뵙자 하셨지요.” “흐음….”
이원수는 걱정스러운 한숨을 삼켰다. 처가의 일로 크게 상심하여 곡기를 끊고 자리에 몸 져눕기를 어언 몇 년 째였다. 모녀의 사이가 아주 각별했으니 그 슬픔의 깊이를 어찌 가늠할 수 있을까만, 그런 그녀에게도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는 자식들이 있으니 자리를 털고 일어 서길 내심 바랐다.
그랬는데 어느 날 문득 정신을 차려 수를 놓기 시작했다. 원래 그림과 글씨를 비롯해 자수 에도 아주 능통하던 사임당이었으니, 예전의 취미를 다시 되찾았나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몰두하는 경향도 있었다. 저러다 도리어 몸이 상하지는 않을지 이원수는 걱정이 아니 될 수 없었다. 부친의 그런 마 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곁에 서 있던 현룡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다시 안부를 여쭙고 오겠습니다.”
“그러겠느냐?” 현룡은 공손히 고개를 숙이며 몸을 돌렸다. 곧장 안채로 걸어간 현룡은 문 너머에서 목소리를 냈다. “어머니, 현룡입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어머니…?” “들어오너라.” 그제야 문 너머에서 대답이 나왔다. 현룡은 조용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수를 놓고 있던 사임당은 고개를 잠깐 들어 아 이를 반겼다.
발소리를 죽여 사임당의 앞으로 다가온 현룡은 깊이 절한 뒤 바르게 허리를 세우고 앉았 다. 올해로 열여섯 밖에 되지 않았다지만 그 의젓한 풍모는 여느 어른에 비해도 모자람이 없 었다. 떠날 채비가 거의 다 되어 간다는 말을 꺼내려던 현룡은 사임당의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잠시 말을 뒤로 미뤘다.
시선은 절로 사임당의 손끝과 그 손에서 피어나는 꽃을 향했다. 현룡의 눈은 커다랗게 벌 어졌다. 몇 달 전부터 놓았던 수는 이제 거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리꽃, 모란나 무, 장미나무, 국화가 각 폭에서 괴석과 어우러졌는데, 그 모양새가 천연한 꽃에 견줄 만해 서, 깜박 눈을 감았다 뜨면 바람에 꽃이 나부끼는 듯 하고, 나리꽃과 모란, 장미와 국화가 만 들어내는 향기에 흠뻑 취해서 구름 위를 거니는 듯 했다.
정녕 이를 사람의 솜씨라고 할 수 있을지. 감탄을 하자면 수백 번을 해도 모자랄 것이며, 찬사를 올리자면 어느 문장으로도 표현할 수 없으리. “아아, 이거야 원, 네가 왔는데도 자수에 열중하고 말았구나.” “아닙니다, 어머니. 소자 어머니의 자수에 시간을 잊고 말았습니다.” “아직 완성되기 전이긴 하지만 어디 보겠느냐?”
사임당은 손에 든 바늘을 놓고 자수를 놓은 명주를 현룡의 방향으로 돌렸다. 가까이에서 신묘한 솜씨를 보던 현룡은 문득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꽃이 있는데 벌과 나비가 없는 이유는 무엇 때문입니까?” “꽃이 피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사임당의 대답을 들은 현룡은 크게 탄복했다. 과연 나리꽃과 모란나무, 장미와 거의 완성이 되어가는 국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꽃은 꽃 망울이 맺힌 채였다.
“헌데 어머니, 어이하여 꽃들이 모두 봉우리 진 모습입니까?” “정말로 꽃을 피울 수 있을지 퍽 그 솜씨가 의심스러워서이다.” “그런―, 어느 누가 어머니의 솜씨를 의심할 수 있단 말인지요.” 현룡은 가당치 않다며 고개를 저었다. “봉우리 진 꽃이어도 활짝 핀 꽃이어도 그 천성은 변함이 없으니, 그 천성을 깨우친 이여 야만이 이러한 자수를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임당은 차분히 제 목소리를 내는 셋째 현룡을 흐뭇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으니 하나 같이 귀한 자신의 자식이지만, 셋째 현룡은 그 중에서도 각별했다. 총명하여 하나를 익히면 열을 깨우치는 아이는 여덟 살 때, 신동이란 소문이 강릉 땅에 자자하게 퍼졌으며, 이미 3년 전인 열셋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행동거지는 올곧고 어긋남이 없어서, 예의가 바르고 겸손했다. 강릉 오죽헌에서 아장거리며 걷던 그 모습이 여전히 생생한데, 벌써 열여섯이라. 어찌 저리 자랐단 말인지.
아이와 함께 강릉에 살 던 때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난데없이 사무치게 밀려온 그리움에 사임당은 의젓한 모습으로 자란 셋째 현룡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벅찬 마음을 안 고서 눈을 깊이 감았다 떴을 때였다. “아…!” 문득 사임당의 입에서 짧게 탄성이 나왔다. 그간 자신의 눈앞을 캄캄하게 가린 혼탁한 기운은 어느새 갠 하늘처럼 맑아져, 현룡에게 어린 청명한 기운이 훤히 보였다. 올곧고 맑은 아이의 기운은 푸르게 넘실거리며 어깨 위에 서 손짓하고 천장으로 훌쩍 솟아오르기도 한다. 흡사 승천하는 용의 몸짓 같구나. 이 장쾌한 광경을 어찌 잊고 있었단 말인지. 이 모두 한 땀, 한 땀, 정성을 녹여 수를 놓은 덕분이리라. 참으로 감격스럽게 그지없다.
“어머니…?” 모친이 명주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그 모친의 명주에 자수를 놓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여 전히 방 안에 홀로 틀어박혀 눈을 뜨고 있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장님마냥 살고 있었을 터다. “어머니? 괜찮으십니까?” “아―, 그래. 그보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았느냐?” 사임당은 얼른 아이의 기운에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평안도로 떠날 채비를 마쳤습니다.” “아차. 그랬지.” 사임당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 정신 좀 봐라. 아침에 일찍 눈이 떠져 조금만 자수를 손 보고 나가보겠다는 게 그만 이 리 되었구나. 그래, 기분은 어떠냐?” “기대가 되는 만큼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걱정이라….” 사임당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시선은 벽에 머물렀지만 마치 그 벽을 너머로 멀고 먼 곳 을 바라보는 듯 했다.
“현룡아 앞으로 네가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거든 신령스러운 산에서 심신을 달래도록 하 여라. 네가 나고 자란 강릉도 퍽 좋지만, 저 북쪽의 금강산만큼 신령스러운 산이 없단다. 더 욱이 네 기운에는 강릉 땅보다는 금강산이 더 좋을 성 싶기도 하다.” “제 기운 말씀입니까?” “너를 어찌하여 ‘현룡’이라 부르는 지, 내 일전에 말한 적이 있지.” “검은 용이 바다에서 집으로 날아 들어오는 태몽을 꾸셨다 하셨지요.” 사임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이 바로 네 기운이니라. 평시에 속세에 머물러 있을 때는 그 기운을 풀어놓을 곳도 없고 치유 받을 곳도 없으니 퍽 답답하기 마련이지. 내 일찍이 금강산에 간 적이 있었 거늘 그 금강산의 영험하기가 하늘에 맞닿아있으니, 그곳이라면 네 기운도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게다.” 가만히 귀 기울여 듣고 있던 현룡은 입매를 단단히 굳히며 대답했다. “명심하겠습니다.”
“한 가지 더 당부하자면, 사람의 일에 관여하면 관여할수록 몸을 상하게 될 터이니 더러 한 발자국 떨어져 있을 필요도 있느니라.” “허나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어찌 사람의 일에 관여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더욱이 그 일이 그른 일이라면, 이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는 건 군자의 소임이 아니라 하였습니다.” “그래, 그것이 언제나 문제였지.” 그 마음이 세상을 살릴 것이나, 그 마음이 제명을 재촉할 것이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때때로 눈을 감고 귀를 닫을 필요도 있다 하겠지만, 세상을 위해서라 면 차마 그럴 수 없다. 그래서 어느 쪽을 택한단 말인가. 사임당에게도 이 문제만은 쉽지 않 은 일이었다.
희미하게 표정을 흐리던 사임당은 문득 입을 열었다. “자, 그만 나가보자꾸나.” 자리를 털고 일어난 사임당은 먼저 앞장섰다. 댓돌 위에 가지런히 놓인 신을 신고 마당으 로 나서자 기다리고 있던 이원수가 두 사람을 반겼다. “부인, 몸은 좀 어떻소?” “여느 때보다도 좋습니다.”
사임당은 미소를 머금은 낯으로 답했다. “채비는 잘 되었답니까? 제가 살펴야 하는데 말입니다.” “괜찮소. 부인이 그리 걱정할 거 없소.” 이원수와 사임당은 마주 서 서로를 바라보며 석별의 정을 잠시 나누었다. “그보다 당분간 집을 떠나 있을 텐데 괜찮겠소?” 괜한 걱정을 한다며 사임당은 온화한 미소를 보였다.
“저야 원래 한적한 곳에서 잘 지내지 않았습니까. 그보다 아이들이 걱….” 걱정이라는 말은 채 이어지지 못했다. 사임당의 시선은 이원수의 뒤에 있는 현룡에게 머 물러 있었다. 말을 살피는 아이의 뒷모습이 무언가 이상했다. 낯선 기운에 사임당은 눈을 깊 게 감았다가 떴다. 아이의 청청한 기운에 알 수 없는 거무스름한 것이 섞여 있었다. “―?!” 사임당의 두 눈은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부인…?” 사임당은 두 눈을 문지르며 다시 현룡을 살폈다. 거무스름한 무언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지만 불쑥 솟아 난 불안은 좀체 가시지 않는다. “현룡이도 꼭 가야만 하는 게지요?” “부인, 그게 무슨 소리요?” “적적해서 그러지요.” 이원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적적이라니? 평소 사임당이 할 법한 말과는 사뭇 달랐 다. 이원수는 여전히 현룡을 바라보는 사임당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말 먹이를 챙기는 아이 의 모습은 달리 특별한 데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자신의 눈으로 보아서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지금껏 사임당이 무언가 이 상하다 하면 필시 이상하게 되었고, 그르다 말하면 그 또한 필시 그른 것이 되지 않았던가. 사임당의 말을 들어 화를 피한 적도 소소한 것까지 전부 따지면 손꼽을 수 없이 많았다. 그 리고 그 중에는 제 목숨을 해칠 만큼 큰 화가 될 뻔한 당숙 이기(李芑)의 일도 있었다.
바로 몇 년 전, 우의정이었던 이기의 문하 가서 노닐던 자신에게 사임당은 표정을 굳히며 그 집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권하였다. 그때 그녀의 말을 들었기에 망정, 그렇지 않았다면 이기가 일으킨 을사사화에 휘말려 자신도 큰 화를 입을 뻔 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지만, 사임당에게는 앞을 살피는 현명한 눈이 있는 것이리라. “현룡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이오?” 예전 일을 떠올린 이원수가 넌지시 물었다. “아무 것도 아닙니다. 봄 햇살이 너무 밝아서 눈이 도리어 어두워졌나 봅니다.” 사임당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
“부인, 정녕 괜찮소?” “제 걱정은 그만하면 됐습니다.” 사임당은 연거푸 고개를 저으며 걱정을 막았다. 아무래도 평안도까지 먼 길을 떠난다니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 모양이었다. “자, 그만 가십시오. 이러다 늦겠습니다.” 사임당은 손을 흔들어 평안도로 떠나는 일행을 재촉했다. 이원수와 맏형 선의 뒤를 따르 던 현룡은 문지방을 넘으려다 말고 다시 몸을 돌려 사임당에게 깊이 절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그래, 어서 가봐라.”
제 걱정은 말라며 손을 휘저어 다시 보내는 사임당은 평안도로 떠나는 행렬이 저 멀리 동 산을 넘을 때까지 문간에 서 있었다. 점점이 이어지는 행렬은 어느덧 실눈을 떠도 보이지 않 게 되었다. 사임당은 마지못해 몸을 돌렸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잠깐 스쳐가듯 보인 거무스름한 형체가 왜 이리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단 말인지. 서성거 리며 마당을 거닐어도 기분은 좀체 나아지지 않는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사임당은 안채 로 돌아왔다.
달리 마음을 돌릴 곳이 필요해진 그녀는 다시 자수바늘을 손에 들었다. 곱게 접어 둔 명주 를 펼치자 봉우리 진 꽃들이 시선을 빼앗는다. 캄캄한 굴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었던 나날들. 영영 달빛도 햇빛도 없는 곳에 갇혀 나올 수만 없을 것만 같았던 그때, 자신은 마지막으로 안간힘을 내어 바늘을 들었다.
하얗게 펼쳐진 명주는 흡사 사방천지 쌓은 눈밭 같아서, 바늘을 들고서 식은땀만 잔뜩 흘 리다 한 땀도 두지 못한 때도 허다했다. 자신은 그 언젠가 사방으로 훨훨 날며 붓질을 하던 때와는 사뭇 다른 처지였다.
하물며 머릿속으로 아무리 꽃을 떠올려도 꽃이란 꽃은 죄 뭉개져서 무엇부터 해야 하는 지, 어디부터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기만 했다. 너무도 막막한 기분에 바늘을 내팽개 치고 도망치고 싶었던 마지막 순간, 다시 안간힘을 짜내어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한 땀을 두었 었다. 그것이 땅으로 고개를 푹 숙인 나리꽃이었다.
나리꽃을 시작으로 모란과 장미 그리고 국화에 이르기까지, 꽃들은 한 송이 씩 흰 명주 위 에 한 땀 한 땀, 인고의 시간을 머금고 새겨졌다. 그 캄캄했던 시절을 자신과 함께 한 꽃들은 차마 활짝 피지 못해 나리꽃이며 장미이며 모두 봉우리가 져버렸다. 사임당은 손을 뻗어 국화를 어루만졌다. 섬세하게 맞물린 꽃잎들은 하나만 남기고 모두 완성되어 있었다. 한 장의 빈 꽃잎 자리를 앞에 두고 사임당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영 영 끝낼 수 없을 것만 같았는데, 이렇게 마지막에 이르러 있다. 감회가 새로워서 사임당은 가슴이 떨렸다.
“어머니, 이 자수를 완성하면 진정 어머니의 뜻을 알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요?” 그리운 모친의 모습을 그리며 사임당은 바늘을 고쳐 잡았다. 추억이라 부르기에는 모질기만 했던 지난 시절이 자수실과 함께 명주 천을 빠져나간다. 색실로 나리꽃을 새기는 동안은 자신은 나리꽃이 되고 싶었고, 모란을 새길 때는 또한 모란 이 되고 싶었다.
활짝 피지 않아도 좋으니 그 자리에 있기만 하여라.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한 땀에 녹여낸 인고의 시간 속에서 사임당은 겨우내 얼어붙은 땅이 녹듯 딱딱하게 뒤엉킨 기운 을 풀어냈다. 그렇게 바늘은 길고 긴 여정을 거쳐 국화꽃에 이르렀다. 땅바닥으로 푹 곤두박질치던 줄 기는 마지막에 힘을 내어 고개를 쳐들었고, 휘청거리며 옆으로 휘던 줄기도 어떻게든 하늘 을 바라보며 꿋꿋하게 몸을 세웠다.
색실을 엮은 바늘은 명주를 지나 길게 빠져나갔다가 좁은 보폭을 걸어 다시 앞으로 빠져나 왔다. 한 땀의 거리는 참으로 미미하기 짝이 없지만, 성큼성큼 걸어서는 결코 좋은 자수가 될 수 없었다. 사임당은 여느 때보다도 더 신중하게 바늘을 놀렸다. 차차 차오르는 꽃잎은 이제 뾰족한 끝머리만이 남았다.
“하아….” 사임당은 깊게 심호흡을 했다. 경건하게 마음을 다잡으며 마지막 한 땀을 놓았다. 바늘은 얄팍한 꽃잎의 끝을 마무리했다. 사임당은 떨리는 손으로 실을 거두어 매듭을 지었다. 촘촘 하게 엮인 매듭과 함께 그간의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드디어…!” 손에 든 명주를 바닥에 드넓게 펼친다. 아무 것도 없어 수북이 쌓인 눈밭 같기도, 사방천지로 휘몰아치는 성난 눈발 같기도 했던 흰 명주는 숨을 쉬는 땅이 되어 꽃을 머금었다. 실로 자아냈으나 나리꽃과 모란, 장미와 국 화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실제 꽃 마냥 천연한 기운을 가졌다. 벅찬 가슴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때였다. 목구멍까지 치솟은 감격이 추스를 겨를도 없이 불쑥 터졌다. “아아…!” 그 순간이었다.
고개를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있던 나리꽃의 꽃망울이 차츰 벌어지고 있었다. 화들짝 놀 란 사임당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 광경을 정신없이 지켜보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어디선가 향긋한 장미향이 코끝을 스쳤다. 황급히 눈길을 돌리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는 봉우 리 진 장미도 탐스럽게 피고 있었다. 색실로 자아낸 꽃들은 나리꽃을 시작으로 서로 앞 다투어 일제히 피어났다. 물기를 머금 은 꽃잎이 눈길을 빼앗고 갓 피어난 꽃의 청초한 향기가 정신을 신묘하게 일깨웠다. 이 얼마 나 놀라운 광경이란 말인가.
허나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눈앞을 어른거리는 무언가에 사임당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 한 마리 나비가 팔랑거리며 활짝 피어난 자수 꽃 위를 맴돌았다. 물씬 피어오르는 향기에 이끌려 나비와 벌이 연이어 방안으로 날아들었다. 자신이 머문 곳과 자수가 놓인 그림 속의 세계의 기운이 원활하게 통하여 이윽고 하나가 된다. 열 댓 마리의 나비는 팔랑팔랑 여유로이 날개 짓을 하며 꽃 위를 맴돌고 벌은 제법 날랜 기 세로 나리꽃에서 모란으로 모란에서 다시 장미꽃으로 활짝 피어난 꽃 마다 연신 앉았다 튀어 오르기를 반복했다.
그 광경이 퍽 놀랍고도 신기하여 정신없이 빠져들던 무렵이었다. 문득 눈꺼풀이 알 수 없는 힘에 밀려 깊게 감겼다. 아늑한 어둠에 전신이 휩싸이는 순간, 그 검은 어둠 속에서 사임당은 셋째 아들 현룡을 보았다. 현룡은 제 아비와 맏형과 함께 배를 타고서 넘실넘실 출렁이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 데 갑자기 맑던 하늘에 구불구불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세찬 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작 은 배가 이리 출렁, 저리 출렁 흔들리다가, 파도에 휩쓸려 높이 뛴다. 번쩍 허공으로 뜬 배가 순식간에 뒤집혔다.
“―!!!” 콰르르르 요동치는 소용돌이가 현룡의 발목을 잡았다. 새하얗게 질린 아이의 얼굴이 물거 품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현룡아!!” 쾅―! 헛것을 뿌리치는 듯 앞을 휘젓는 사임당의 손길에 밀려 궤상이 뒤집혔다. 꽃마다 노닐던 나비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무리지어 꿀을 찾던 벌들은 모란꽃에서, 자수가 놓인 세계와 그 밖을 자유로이 노닐던 나비와 벌은 그렇게 순식간에 그림 안으로 죄 모습 을 감췄다. “현… 현룡아…! 현룡아 안 된다!” 버르르 사지를 떨던 사임당은 벌떡 일어나 버선발로 뛰쳐나왔다. 대문까지 단숨에 달려 나가던 사임당은 숨이 턱 막혀서 문간을 붙잡고 멈췄다. 눈앞이 캄캄해지더니 정신이 까무 러칠 듯 아뜩하여 사임당은 버티지 못하고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사임당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콱 틀어 막힌 숨통을 틔우려 애썼다. 파르스름한 눈자위가 움푹 꺼져서 허겁지겁 숨을 들이마시는 것에 맞춰 들썩였다.
차라리 자신이 광병이 들어 헛것을 본 것이라 믿고 싶었다. 만인의 손가락질을 받아도 좋 으니 단단히 미친 광인이었으면 했다. 허나, 그럴 리 없었다. 반쪽짜리 선인으로 태어났지 만 앞날을 보는 능력만큼은 정확했다. 와락 눈물이 솟구쳤다. “현…룡아….” 안 된다. 정녕 아니 된다. 당장 사방팔방 뛰어 누구라도 좋으니 자신의 아들을 살려다가 호소해야겠지만, 그 말을 한다고 해서 어느 누가 믿는단 말인가. “어째서…! 어째서 제게 이런 모진 시련을 안기십니까?”
사임당은 먹먹한 심장을 두드리며 세상에 없는 모친에게 하소연했다. 차라리 명주를 남기 지 않았다면 자신이 수를 놓을 일도 없을 것이고, 그랬다면 어둠 속에 갇혀 지냈던 그 시절 그대로 머물러 이런 끔찍한 장면을 보지 않아도 됐을 터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몰랐더라면, 아무 것도 보지 못했더라면―!
두 손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몸부림치던 사임당은 슬픔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풀 썩 쓰러졌다. 그대로 까무러칠 듯 깜박깜박 꺼져가는 눈앞으로 문득 모친의 모습이 보이다 말기를 반복했다. 자신이 강릉을 떠난 그날, 굽이굽이 험한 대관령을 넘던 그날, 지친 몸을 이끌고 시가에 도착한 그날, 어느 하루 빠지지 않고 모친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손바닥이 닳도록 빌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은 모친의 기운에 힘입어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다.
하지만 모진 운명의 그림자는 자신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강릉 땅의 천연한 기 운과 사뭇 다른 한양 땅에 적응을 못해 생사를 오가며 열병을 앓는 그 순간, 길게 드리운 운 명의 그림자는 죽음까지 가까워져 있었다. 모친은 강릉 땅에서 그 시커먼 그림자를 바라보 았다.
‘인선아, 내가 대신 가겠다.’ 온화한 미소에 사임당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어머니!!” 생생하게 떠오른 모친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사임당은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뻗었던 두 팔을 털썩 늘어뜨렸다. “…그…래서였구나.” 입술을 질끈 깨문 사임당은 겨우 몸을 가누어 일어났다. 모친도 자신의 마지막을 본 것이다. 선인과 달리 인간의 명은 하나뿐이니, 모친은 자신에 게 그 하나뿐인 명을 주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게다. ‘세상은 세상의 뜻에 맞게 흘러가도록 두어야 한단다. 섣불리 개입했다가는 크나큰 화를 입을 것이야.’
모친의 당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허나 제 아무리 인간의 몸으로 세상의 이치에 관여하 면 안 된다지만, 눈을 감으면 그 검은 눈꺼풀 안으로 앞날의 일이 문득 떠올라 눈앞을 어지 럽히는데, 어찌 고개를 돌려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그것이 자식의 일이면, 제 자신 의 안위는 대수도 아니었다. 부서져라 두드려 멍든 가슴을 안고서 사임당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무정한 하늘은 오늘따라 티끌 한 점 없이 맑았다.
“어머니, 결국 이리 될 운명이었던 게지요.” 1551년. 48년의 세월에 종지부를 찍는다. “이제 저는 어머니 곁으로 갑니다.” 모친이 묻힌 방향을 향해 인선은 깊이 절했다. 흙바닥에서 일어선 그녀는 몸을 돌렸다. 신 령스러운 금강산이 있는 방향이었다. 언젠가 멀지 않은 앞날이 문득 떠올랐다. 사임당은 희 미한 미소를 거두었다. “3년 뒤, 아이가 열아홉이 되면 그곳에 발길을 향할 것입니다. 아무쪼록 굽어 살피소서.” 사임당은 금강산을 향해서도 깊이 절했다.
질끈 감은 눈꺼풀 너머로 이번에는 훌륭하게 장성한 아이의 모습이 언뜻 스쳤다. 지독한 슬픔을 이겨냈기에 아이는 더 훌륭히 자라났다.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 장차 세상의 이치를 꿰뚫어 훌륭히 될 ‘율곡 이이’다. “참으로 복된 세상입니다.” 고개를 든 사임당의 얼굴에는 평온한 미소가 머물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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